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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경체] 예나 지금이나 부담인 세금…역사 속 해법은?
- 작성일
- 25.12.25
[EBS 뉴스]
서현아 앵커
연말이 다가오면서 많이들 관심 가지시는 주제입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세금.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언제나 부담이 되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은 끊이지가 않습니다.
청소년 경제 체력 기르기 프로젝트, 오늘은 역사 속 세금과 체납 이야기를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와 짚어봅니다.
어서 오세요.
역사와 경제를 얘기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세금인데요.
그만큼 시대상을 잘 드러내는 소재라는 얘기겠죠.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세금은 지금과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지금은 홈택스나 계좌이체로 간단히 세금을 낼 수 있지만, 예전엔 어마어마하게 힘들었습니다.
옛날에는 세금, 특히 토지세는 곡식을 직접 내야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실어나르는 것부터가 큰 일이었습니다.
각 지역 관청에 세금으로 많은 곡식들이 모이면, 이것들을 주로 배로 실어 한양까지 운반했는데, 도중 배가 침몰하거나 곡식이 썩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보다 더 문제가 많은 세금은 공물이었습니다.
이건 각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것이었는데, 관리들은 품질이 나쁘다며 퇴짜를 놓기도 했고, 때로는 상인들과 결탁해서 백성들에게 억지로 비싼 물건을 사서 세금으로 내게 하는 '방납'의 폐단까지 생겨났습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세금인 '역'은 생업을 그만두고 노동을 하거나 군대에 복무해야 했고, 이걸 안 하려면 다른 세금을 내야 했으니, 당시 세금 납부는 정말 부담이 컸습니다.
서현아 앵커
사실 지금처럼 원천징수하는 것도 참 힘든데 곡식이 썩거나 공물이 퇴짜 맞아서 다시 사야 한다.
그렇다면 생존의 위협까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금을 제때 내야 한다는 인식은 어떻게 유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세금 내는 게 아깝고 낭비처럼 느껴지지요.
그런데도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천원 지폐에 실린 퇴계 이황은 대표적인 모범납세자였지요.
퇴계 선생은 자식에게 "세금을 늦지 않게 내라"고 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그냥 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올바른 사람으로 있기 위한 수양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지도층인 양반이 솔선수범해서 세금을 내야,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서지요.
조선에서 가장 존경받는 학자도 제때 세금을 내는데, 누가 감히 안 내겠고 관리들이 감히 횡포를 부릴 수 없었지요.
성실한 납세는 사회의 공정성을 높였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그런데 이렇게 사회 지도층이 모범을 보이더라도 일반 백성들의 현실과 맞지가 않으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텐데, 특히 이 공물 제도가 많이 어려웠다고 말씀하셨죠?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조선의 세금제도의 문제는 경직된 행정 때문입니다.
원래 공물은 나라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각지의 특산물을 바치게 한 것인데, 이 공물의 목록은 조선 초기에 정해지고 수백 년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흑산도는 공물이던 닥나무가 멸종했고, 지금 고성의 공물이던 인삼은 가격이 수십배로 뛰어올랐지만 여전히 똑같은 물건을 똑같은 양 만큼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다른 지역에서 비싼 돈을 주고 물건을 사다 바쳐야 했고,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백성들이 이렇게 고통받는 와중에 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모습이었다고 하죠.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네, 지금의 고액체납자처럼, 옛날에도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양심없이 굴곤 했습니다.
태종의 오른팔이었던 하륜이 그랬습니다.
그는 주인이 없는 노비들을 몰래 빼돌려 10년 넘게 부렸습니다.
그러다 결국 추심이 들어오게 되자 하륜은 태종에게 "오래 같이 지내다보니 정이 들었다"는 핑계를 대며 젊은 노비 대신 늙고 나이든 노비를 대신 내려는 '꼼수'를 부렸죠.
비록 태종이 하륜과의 친분 때문에 용서해주었지만, 이는 권력자가 법망을 피해 나라의 재산을 가로챈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하륜은 '욕심 많은 체납자'로 기록이 되었지요.
서현아 앵커
네, 그런데 아무리 신분제 사회였어도 백성들이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들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습니까?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다행히 옛날 조상님들은 이런 부당한 일이 계속되면 참지 않았습니다.
항의하고, 싸우고, 결국 해결책을 찾아내지요.
앞서 소개한 흑산도와 강원도 고성(간성은 옛날 이름입니다)이 그러했습니다.
주민들은 세금 부담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직접 한양으로 찾아갔고, 징을 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을 벌였습니다.
사정을 들은 정조는 결국 해당 세금을 돈으로 납부하게 하거나, 납부 양을 줄여주었습니다.
정말 다행한 일이었지요.
서현아 앵커
일종의 조선판 국민 청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잘못 매겨진 세금에 또 집단으로 맞선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경북 경주에서의 일이라고요?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이 사건은 1902년, 경주 강동면 국당리에 있었던 일입니다.
세금을 거두는 관리가 이 마을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허위 신고했습니다.
그러자 국당리의 사람들 21명이 힘을 합쳐 반박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 때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양반 누군가의 노비"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양반이 직접 소송을 하지 않고 노비를 대신 내세운 것이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노비도 아닌 농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을 주민들은 이 소송에서 이겼고, 경주 군수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세금은 나라의 운영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최대한 법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운영이 되어야 했고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서현아 앵커
네, 잘못된 일에 맞서는 결기가 대단했네요.
그런데 이 세금 체납의 역사에서 악명 높은 이름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매국노 이완용인데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1925년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 최고의 부자이자 권력자 이완용과 그 아들 이항구는 '학교비' 4천 원을 내지 않았습니다.
잘 알려진 매국노인 이 사람들은 국민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세가 아깝다고 내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워낙 이완용의 권력이 당당하니 정부조차 차마 압류를 못 했습니다.
나 하나면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이기적인 일을 한 것이지만 덕분에 대대손손 욕을 먹게 되었지요.
서현아 앵커
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세금은 뭐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게 특히 더 가혹하게 또 힘들게 다가오는 면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세금과 체납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세금을 내는 것은 단순히 아깝게 돈을 나라에게 뜯기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사회의 인프라 - 가로등, 깨끗한 수돗물, 아이들의 교육, 그리고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 유지 비용'입니다.
역사적으로 세금이 공정하게 걷힐 때 나라는 발전했고, 부패한 자들이 세금을 가로채거나 가난한 자에게만 부담이 주어질 때 나라는 망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모범납세자 이황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세금 납부가 곧 내가 사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중요한 기여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공정한 세금이 나라를 키웠고 불공정한 세금이 나라를 흔들었다.
세금은 아깝게 내는 돈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를 유지하는 비용이라는 점을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작가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