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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층기획] 반도체 강국의 역설…떠나는 공학 인재들

[교육,중등,대학,초등,고교]
박광주 기자
작성일
26.05.15

[EBS 뉴스12]

최근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기록적인 수익을 내며 국가 경제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까지 대한민국 산업 성장의 중심에는 늘 공학 인재들이 있었죠.


하지만 정작 AI 시대를 주도할 인재가 절실한 지금, 이공계 학생들은 '의대 블랙홀'로 몰리고 있습니다.


기술 패권 전쟁 속 흔들리는 한국 공학의 현실과 해법을 박광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정규 수업이 끝난 늦은 오후.


서울과학고 발명 동아리 '사고뭉치' 동아리실에 학생들이 모여듭니다.


3D 프린터로 부품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꺼내 토론을 이어갑니다.


"풍력발전을 하면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 좋은 곳인데, 실제로 부피가 큰 애들을 가져가기 어려우니까 눕히든 완전히 접어서 동그랗게 만들든 해서…."


동아리장 김민재 군은 국제올림피아드 생물학 분야 국가대표입니다.


목표는 공대에 진학해 생명과학 연구를 이어가겠다는 것. 


하지만 요즘 입시 현실에서 이 선택은 오히려 드문 길입니다.


인터뷰: 김민재 3학년 / 서울과학고등학교

"주변에서 이제 국가대표까지 했으면 의대를 갈 거 아니냐 약간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일단 의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생명과학에서 사용하는 도구들이나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그런 우리가 도구로 쓸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해서 되게 밀어붙이고 되게 치밀하게 이용해서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공학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지금은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공대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이어집니다.


늦은 밤, 창업을 꿈꾸는 공학도들이 사업 아이템을 다듬고 있습니다.


"조금 더 뾰족하고 심플한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었으면 좋겠다. 피부분석은 범위가 넓다 보니까 피부노화 쪽으로 잡을까?"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 학생들도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인터뷰: 강채은 기계공학부 / 서울대학교 

"(공대 진학에 아쉬워한 사람은?) 학교 선생님, 그래도 (의대를) 한 장이라도 써보지 그러셨습니다."


인터뷰: 서준빈 건설환경도시공학부 / 서울대학교 

"친구들은 많이 물어보는 것 같아요. 왜 의대를 안 갔냐 또래들의 의견으로는 약간 의대가 가면 편한 게 진로 생각이 없다."


한때 공학은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최전선이었습니다.


1970~80년대의 중화학공업의 전성기, 엔지니어는 국가 성장의 상징이었습니다.


인터뷰: 박희재 교수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많은 엔지니어가 필요했고 많은 공학도가 필요했던 그런 상황이었죠. 훌륭한 엘리트 훌륭한 인재들을 공학을 하는 그런 젊은이들로 이렇게 하고자 하는.. 서울공대가 서울의대보다 (입결이) 훨씬 높았고요. 다른 데 의대는 말할 것도 없고 뭐 저희 서울공대 다 채우고 그 다음에 이제 이렇게 다른 데 의대를 얘기할 정도로 공대의 존재감이 대단했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벤처 붐이 이어졌고, 공대 출신 창업가들은 IT 산업의 주역이 됐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사회는 '혁신'보다 '안정'을 택하기 시작했고,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대로 몰렸습니다.


인터뷰: 황윤준 물리교사 / 서울과학고등학교

"과학자로 갔을 때의 그런 불안감에 비해 의학을 전공했을 때의 삶이 다르다 보니까, 자기 진로에 확신이 서지 않는 학생들이 오히려 더 이렇게 의대 쪽으로 갈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그리고 2026년 올해, 서울대 정시합격생 180명이 등록을 포기했고, 공대에서는 정원의 약 15%가 이탈했습니다.


인터뷰: 김영오 학장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850명 정도 들어오면 한 15% 정도가 이탈이 돼서 굉장히 우려가 컸습니다. 본인의 자녀를 이제 공학도로 키우겠다라고 하는 그런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에는 조금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위기는 입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공학 인재들의 해외 유출도 심각합니다.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공학 인재는 약 3천~4천 명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상 격차입니다.


해외 빅테크와 국내 기업 간 임금 차이는 경력 13~14년 차 기준 최대 4배까지 벌어집니다.


인터뷰: 최준 차장 / 한국은행

"42%가 넘는 분들이 이제 해외 이직에 대해서 고려하고 있다라고 응답을 하셨거든요. 우리나라의 평균 연봉은 누가 봐도 이게 성과 연봉이 아니에요. 해외 같은 경우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한 40대의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그 이후로는 오히려 연봉이 좀 감소하는 추세거든요."


고급 인력과 일자리의 미스매치도 심각합니다.


박사급 인력은 쏟아지는데 이들을 받아줄 고급 일자리는 부족합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배출된 박사 인력은 관련 일자리의 두 배에 달했고, 박사 학위자의 59.3%가 학력조건이 학사나 석사인 직업군에 종사했습니다.


인터뷰: 박기범 선임연구위원 / 한국과학정책연구원

"세계적 프론티어 연구를 하는 그런 인력을 배출하는 대학과 실제 대기업이 필요한 그런 연구를 위한 인력을 기르는 대학원 그다음에 조금 더 좀 더 생산적인 중견 기업이나 지역의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 가르치는 대학 이런 좀 특성화 역할 분담이 필요한데 모든 대학원이 하나의 골로 일렬로 달려가는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까.


시장은 이미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반도체 호황을 맞은 SK하이닉스에서 직원 1인당 수 억원 수준의 파격적인 성과급을 예고하자, 관련 계약학과 수시 경쟁률은 30대 1로, 정시 경쟁률은 한 해 사이 38.7% 치솟았습니다.


공학도들이 "도전해볼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해법은 '창업'이라는 사다리입니다.


공학이 안정적인 직업을 넘어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 김영오 학장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실패를 저는 배움으로 봐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시행 착오가 아니라 시행 학습으로 봐서 우리가 그거를 시행 학습이 계속 일어나도록 오뚜기처럼 계속 일어나도록 사회가 다시 일으키는 연대적 책임을 같이 같이 만들어 줘야 될 것 같습니다."


캠퍼스 안에서도 창업 생태계를 키우려는 움직임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KAIST에서는 지금까지 약 2천 개 기업이 탄생했습니다.


배현민 창업원장이 졸업생들과 세운 기업은 최근 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배현민 KAIST 창업원장

"기술 패권 시대에서 f-22 전투기 같은 것도 만들고 스페이스X에서 만드는 그런 식의 혁신적인 로켓도 만들고 하려면 정말 다양한 전문가들의 집단이 이제 우리나라에 구성이 돼야 되는데 그러면은 이런 스타트업을 육성을 해 가지고 좀 키워야만 하지 않을까…."


미국 빅테크 출신 인재들이 모여 만든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도 공학 창업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한국의 탄탄한 공학 인재 네트워크와 산업 생태계를 강점으로 꼽습니다.


인터뷰: 정윤석 / 리벨리온 CSO

"반도체 그리고 시스템 반도체에서 누가 이걸 가져갈 거냐 봤을 때, 그거는 한국이다. 한국이 메모리도 잘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처럼 이렇게 전기 컴퓨터 공학과 같은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고 또 그게 받쳐주는 산업계 이런 밸류체인 잘 돼 있는 곳이 미국보다 훨씬 잘 되어 있다."

 

공학의 길을 선택한 청년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들이 이 길을 꿈꾸게 된 이유는 취업이나 연봉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더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인터뷰: 민승희 항공우주공학과 / 서울대학교

"저는 늘 사람들이 저한테 도움을 줄 때나 아니면 제가 도움을 줄 때 늘 고마움과 미안함이 좀 크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제가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고 이걸 찾게 된다면 결국 그 사람들한테 도움 된다는 가치가 되고…."


산업 변화는 빠르고, 창업은 실패할 수 있으며, 연구자의 길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공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불안정함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최예찬 기계공학부 / 서울대학교 

"안정적이면 의미를 남길 수가 없겠죠. 불안정적이어야 도전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공학의 위기는 단순히 입시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산업의 미래, 국가 경쟁력, 그리고 청년들이 어떤 꿈을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공학을 선택한 이들이 기꺼이 도전할 수 있는 보상과 기회가 주어질 때,


'그럼에도 좋아서' 이 길을 택한 청년들의 설계도는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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