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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오진우
To.선생님께...
고3때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도 혹시라는 기대감으로
대학교를 넣었는데 역시 저에겐 빨간 글씨로 합격자가 아닙니다 ㅜㅜ
딱 이글자가 뜨더라구요 . 그 빨간 글자를 캡쳐해서 저는 친구들이
없는 곳으로 혼자 자취를 하면서 공부를 하러갔어요 .
혼자서 학원을 다니는게 쉬운것도 아니었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몸이 너무 힘들었고 특히 몸이 조금이라도 아플때 ,
엄마밥이 너무 먹고 싶을 때 혼자 울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제가 한 선택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서 공부한다는 게
조금은 서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학원에서 처음 만난 선생님은 재수학원에서는
드믄 여자 선생님이 셨어요 ! 복날이면 저에게 집에 가스렌지나
냄비가 있냐구 물으면서 삼계탕도 해주시고 아프시면 먼저
찾아오셔서 얼굴보고 가셨던 분이세요 ^^
그리고 제가 한번은 학원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선생님이랑
개인 상담을 하면서 울고 말았어요 :
'( 그런데 제가 울면서 말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는지 선생님도
같이 우시더라구요 너무 죄송해서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구요 .
같은 반 같은 나이인 친구들한테도 송아 잘 좀 부탁한다고
애들한테 엄마처럼 따로 부탁도 해주시고 그 힘든 재수기간을
부모님없이 강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저에게 가장 큰 지팡이 처럼 저를 의지하게 만들어주신 선생님 같아요 ^^
지금도 근처에서 단과 학원을 운영하셔서 가끔 식사도 같이 하는데 ,
항상 고마운 마음은 한가득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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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오진우
To.선생님께...
제가 원래 우유를 못먹어서 새학기가
될때마다 엄마께서 학교에 오셔서 담임선생님께 제가 우유를
못먹는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2학년때까지는 우유를 안먹고
학교 생활을 했었어요~ 3학년되고나서 역시나 엄마께서 학교에
오셔서 담임선생님께 우리아이는 우유를 못먹는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런데 우유를 신청하는데 안먹어도 일단 신청은 하라고 하시길래
좀 의아하긴했지만 신청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우유를
마셔보라고 하시는거예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억지로
먹이는게 무서워서 울었어요. 그럴수록 단호하게 대하시는 선생님.
그래서 너무 학교가 가기싫었던 날이 많았았어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선생님께서 작은 컵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면서 작은 우유팩에서우유를 컵에 조금씩 따라서
먹어보라고하셨어요. 조금씩조금씩 먹는양을 늘려보자고
선생님께서 다독여주시면서 동시에 혼도 내시면서..
진짜 3학년 2학기때부터는 끈질긴 노력끝에 우유하나를
다 먹을수있게되었는데 솔직히 3학년때는 너무나도 싫었어요.
내가 왜 못먹는 우유를 먹어야하나하면서 학교가 가기 싫고..
그런데 지나고 보면 너무나도 선생님이 감사했어요.
우리 몸에 좋은 우유를 조미령선생님이 아니였다면 못먹고
살았을테니까요. 선생님으로 인해서 제 버릇도 고쳐지고 몸도
건강해져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당시에는 무서웠지만 너무나도
생각나고 보고싶은 선생님~! 너무나도 감사하고 저 이제는
우유 잘먹어요^^ 선생님 덕붙이고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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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오진우
To.선생님께...
전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 이신...김춘자 선생님을꼭 뵈러 가고 싶어요
벌써 일흔을 바라 보시겠네여..
저희는 그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웠어요..
가게에 달린 단칸방에 살았죠.4식구가...
학원이요?? 엄두도 낼수 없었어여...
엄마가 유일하게 저희에게 투자해주시는 것은 한달에 문제집 한권
아직도 안잊어 버려지내요 이달학습, 다달학습~
동생과 저를 상에 앉치고는 매일 풀게 하셨고 다풀면 큰소리 내서
엄마에게 교과서를 읽어주라고 하셨죠...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나누기를 할때죠..
학교에서 시험을 봤어요..나누기 ..나머지가 나오는것...
20문제를 봤는데..2개 맞았나? 하고 다틀렸죠 뒤에서
일 이등을 다퉜어여...
뭐...그때는 창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저를 비롯한 한 10여명의 아이들을 남으라
하시고 나머지 공부를 시키셨어여...
그게 너무속상했나봅니다 ..
뭐 나머지 공부가 속상한게 아니라 친구들이랑 같이 가면서
놀지 못하고 나만 남는것이 속상했던것 같아여
선생님은 20문제를더 내고 틀리면 10문제 또 틀리면 5문제
그렇게 문제를내주셨어여...
웬지 오기에 안풀고 혼이 났죠.....
선생님도 그냥 저를 두셨어여...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갈때 선생님은 "민경이는 내일 또 남아..."
그러시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늦은 시간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 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가게에 도착했는데 엄마, 아빠 놀라서 나오셨죠..
"무슨일이냐고 뭔일이 있었냐고...."
한참을 울고는 나머지 공부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에게 겁나게 혼난기억이 있네여...ㅡ.,ㅡ;;;
그때 느꼈습니다..." 아 내가 뭘 잘못한거구나...."
다음날 저는 선생님에게 잡혀 나머지 공부, 다음날도 나머지
공부..그렇게 1주일을했나봅니다...
그후 나머지는 무섭지 않았어여...
그렇게 안녕한 3학년을 보낸뒤 다시는 그 선생님을 안볼줄
알았는데....웬걸요,,,,, 5학년때 또 만납니다...
그때는 저희 엄마가 사고로 6개월간 병원에 누워 계셔야
했거든요...공부를 봐줄사람도 없었고 저를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 고삐 풀린 망아지였죠...
그러다 그 선생님이 또 담임이 되니 뭔가 오기가 났어여...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저는 5학년 초등학교 과정에서 제일 어렵다는 5학년 수학을
경시 대회 나가서 1등 했지요~
저를 그후에도 수학을 잘할수 있게 해주신건 선생님의
그 말이였어여 " 우리 민경이 과외 했나부다 "...
그말을 저는 이렇게 들었죠...돈을 투자한 애들보다 낫다~
저는 그후 대학교도 수학특차로 들어 갔고 ,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인생의 직업의 멘토 셨죠~
지금의 제가 있게된 " 김춘자 선생님 ~ 꼭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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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오진우
To.선생님께...
제가 중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 , 김은실 선생님~
영어 선생님이셨어여~
그때까지도 여것도 그런 선생님 뵌적 없습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셔서 그런지 완전 프리(?) 하셨죠~
학년초에 학생증 만들게 증명사진을 내라고 하는데 우리 선생님
카메라 가지고 와서 반전체 사진 찍어서 본인이 인화 하셔서
학생증 만들어 주시고 반에는 한둘 꼭 있는 노는 아이가
가출했다고 경찰에 신고 해서 집에도 학교도 안온다고 무슨일있는거
아니냐고 신고도 하시고, 수업 마치면 집에 가기 바쁜 우리들
청소 엉망으로 하고 가니 그냥 우리는 청소 하지 말자며 애들
그냥 보내시고는 빗질 청소, 대걸래 청소 하시고 퇴근하시고
그런 선생님이셨죠....
우리는 그런 선생님을 무지 따랐습니다~.
다른 학년에 또 다른 교복을 입는 고등학생이 되어도 선생님과
연락하고 지냈죠~
그러다 문제는 저희가 고등학교 2학년때 였습니다.
중2때 같은반 친구가 중3때 어머니 돌아 가시고 아버지와 둘이 살았습니다.
그 친구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긋나기 시작했어여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버지와 싸우는 일이 많아졌구요...
고2때 그친구가 남자친구들과 술마시고 늦게 들어 와서 그 친구
아버지께서 그 친구에게 뭐라 하셨고 그친구는 않은 반항심으로
아버지와 대들었나 봅니다.
그 친구 김은실 선생님과 마지막 통화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희는 친구들과 선생님께 소식 건내듣고 그 친구 만나러 갔고
우리 선생님 3일을 빈소를 지키셨습니다....
충격이 무지 크셨던걸 기억합니다.
그후 저희에게 너희가 가장 소중하다.
"세상에 헛되게 생기는 것은 없다 가치 없는것은 없다 다 쓸모와
필요성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필요성은 크고 작고를
떠나 누구에게나 값진것이다 . 모두들 스타가 되려 한다 그러나 까만
칠흙이 없다면 별은 빛나지 못한다 "
라며 저희 다독여 주셨죠...
그후 선생님은 다시 미국으로 가셨고 그후 연락은 끊어 졌습니다.
김은실 선생님 2학년 2반 아이들은 여전히 선생님을
가슴에 담고 있을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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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오진우
To.선생님께...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 고3때 담임선생님 김정은 선생님이
기억에 남아요. 고2때까지 어영부영 공부도 잘안하고 놀다 선생님을
만나 제가 가고싶은대학의 목표가 생겼고 저도 선생님처럼
화학과로 진학하고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1년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선생님을 멘토로 앞이 보이지않았던길에
희망이 비치고 또 대학에 무난하게 진학할 수 있었던것 같아요.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전 그냥 존재감없는
학생이었을거란 생각이 많이들어요. 선생님이 정말 저에게만큼은
용기를 불러일으켜주시고 제 진로를 확실하게 잡아주셨기에 지금의
저와 제가 또 원하던 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고 또 제 적성까지도
알게된것 같아요. 정말 은사님의 말한마디와 진심어린 충고가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 전 믿습니다. 좋은은사님
덕분에 그래도 행복하게 대학을 진학할 수 있었던것 같아
지금까지도 많이 기억에 남아요.대학교때까지도 찾아뵜었는데
직장다니면서 이사하고부터 선생님을 찾아뵙지못해 정말
죄송스런마음뿐이네요. 선생님 정말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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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오진우
To.선생님께...
지금도 지갑속를 열어보면 오래된 사진 한장이 있습니다.
단발머리 여학생과 긴생머리가 아름다운 선생님..
저를 엄마처럼 따뜻하게 안아주신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 오성희 선생님과의 추억를 되새겨 봅니다..
저희 어머니는 참 많이 아프신 분입니다.
좁은 방안에서 하루종일 누워지내시면서 그저 창밖만를 바라보시는
어머니와 하루종일 인쇄소에서 일를 하시는 부모님과 살면서
왜이렇게 세상이 싫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내 상황이 싫고 내가 할수있는건 없다란 생각으로 극심한
사춘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어린나이에 친구들과 가출를 하고 학교를 빼먹으면서
그것이 자유라 생각하고 집에서 벗어날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오성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네요.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학년이 올라가고 담임선생님이 바뀌셨구나 하는 정도의 만남..
그렇게 중학교 2학년 올라가서도 저희 방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루이틀 학교를 빠지고 친구들과 밤늦게 놀면서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날....
밤늦게 집앞 골목에서 선생님를 뵙게 되었어요..
밤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집앞에서 저를 기다리셨다는 말에 밤늦도록
돌아다닌다고 혼날것만 같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괜찮은척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선생님은 단 한마디만를 하시고 뒤돌아 가셨습니다..
" 집에 들어가는거 보려고 왔다~ 오늘은 집에들어가서 푹자고
내일은 학교에서 보자~ "란 말만 남기시고 혼내지도 않고
뒤돌아가는 선생님를 보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평소와 똑같은 시간를 보내다...
친구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어 파출소란곳을 처음으로 가게되었습니다.
아무리 친구들과 놀아도 파출소란곳을 가본적 없던 저에겐
그저 두려운 시간이되어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오성희 선생님께서 파출소에 들어오시면서 저를 보시곤 한달음에
달려와 저를 꼭 안아주시며 얼마나 무서웠냐면서 이제 선생님이
왔으니 괜찮단 말만을 반복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안아주실때 왠지 모르게 엄마의 품처럼
따뜻함를 느끼게 되었어요..
아픈 엄마를 한번도 제대로 안아본적 없던 저에게 엄마의 품이란
어떤 품인지 알수는 없지만..
왠지 따뜻하고 눈물이 나려고하는것이 엄마의 품이 아닐까요!?
저를 꼭 안아주시는 선생님의 품안에서 그동안에 왠지 모를
서러움에 한참를 울게되었습니다..
난 왜 다른 친구들 부모님과 다를까하는 마음과 방황하는 나를
붙잡아주지 않는 부모님.. 그저 저를 바라만 보시던 엄마...
그렇게 한참을 울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파출소를 나오면서 선생님과
왠지 모르게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 둘만의 비밀이 생긴것만 같은 느낌...
멀게만 느껴지셨던 선생님이 가깝게 느껴지고 선생님을 뵐수있는
학교가 즐거워 졌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선생님과 상담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엄마처럼
저를 데리고 놀러도 다니셨던 오성희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짧다면 짧은 방황를 끝내고 학교에 마음을 두고
공부란걸 하게되었습니다.
너무나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런 절 보며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신 선생님..
지금도 가끔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직도 교단에서 학생들를 가르치며 저처럼 방황하는 아이들를
잡아주시는 선생님를 뵐때면 진정한 선생님이란 오성희 선생님를
말하는거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몇달전 제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내가 벌써 할머니가 되는거냐며
너스레를 떠시는 선생님을 뵈면서 지금의 내가 있을수 있었던건
선생님과의 만남이였구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단발머리 학생은 어느새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긴 생머리
아름다웠던 선생님은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속 어머니...
오성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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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오진우
To.선생님께...
저는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 이용훈 은사님 너무 보고싶습니다 ~
늘 어릴때 자주 아프던 저는 학교도 빼먹고 수업도 늘 빠지기 일수였어요 ~
고학년인 5학년이 되기전까지 학교를 가는날보다
빠지는날이 더 많았던듯합니다 ^^
그러다 보니 늘 수업도 뒤쳐지고 체육시간에 참여도 못하고
앉아있는 날이 많았었거든요~
늘 그러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 선생님께 아파도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날이 많았답니다 ~
그런제게 초등학교 3반 저희 담임선생님이셨던 이용훈선생님은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셨어요~
그날 하루도 수업시간에 너무 아픈저는 수업시간에 앉아있는것조차
너무 버거웠답니다 ~
그런 저를 먼저 알아봐주시고 집까지 데려다주신 선생님
가는 내내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
많은 용기있는 말씀과 함께 지금 조금 뒤쳐지는게 인생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말씀을 해주셨던 선생님~
사실 그때는 어려서 무슨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답니다 ~
어릴때 많은 잔병치례를 해서 인지 점점 크면서 많이 건강해졌답니다 ~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힘이 되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제가 어려서 깨닫지 못했었어요~
선생님을 꼭 한번 다시 뵙고 싶네요 ~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 희끗희끗 해지셨을 선생님을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스승이 계셨지만 제게는 초등학교 3학년때
은사님이 가슴에 새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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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이동제
To.선생님께...
김현승 선생님께
학창시절 늘 말썽만부리고 친구들과도 다투기만했던
저를 늘 따뜻하게 감싸안아주셨던 선생님! 지금도 그 시절
선생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잊을 수 없어 늘 스승의날이되면
선생님의 생각이 자주납니다. 남들과 다르다고 차별하지말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라는 그 말씀!! 항상 잊지않고 저 또한
선생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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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이동제
To.선생님께...
선생님한테 보답의 표시릃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못했어요 이번 기회에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않는 선생님들께 꽃다발이라도 한아름
안겨드려서 그동안의 수고와 땀방울을 씻어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교권이 땅에 떨어진것 같아서 넘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하시며 바른길로
인도해주시는 선생님 정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